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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와 사라진 고대 도시들 (건조화, 해수면 상승)

by 트레센드 2025. 5. 17.

인간의 문명은 기후 변화 앞에서 결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고대 도시들의 흥망에는 전쟁이나 경제력 못지않게, 기후의 변화가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건조화'와 '해수면 상승'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기후 조건이 어떻게 고대 거주지를 붕괴시켰는지 살펴봅니다. 유적만 남은 사막 한가운데의 도시들, 바닷속으로 잠긴 항구 유적들은 모두 그 흔적입니다. 기후는 생존의 조건이었고, 변화는 곧 이주의 신호였습니다.

해수면 상승 등으로 사라진 고대 도시

기후는 어떻게 옛 도시에 퇴장을 명했는가

기후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었습니다. 고대의 사람들은 날씨를 읽고, 바람을 따라 농사를 지었으며, 비가 내릴지 아닐지를 두고 운명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 자연의 흐름이, 문명의 존속 그 자체를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고대 도시들—번성했던 무역의 중심지, 정교한 수로와 건축물을 자랑하던 문화의 발원지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것은 전쟁이나 질병, 외침 때문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기후의 변화가 가져온 붕괴였습니다. 기후 변화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도시의 기반을 흔듭니다. 물이 마르면 농경은 지속될 수 없고, 가뭄이 길어지면 공동체는 더 이상 유지되지 않습니다. 또 반대로, 해수면이 오르면 해안 도시는 순식간에 수몰되고, 지반이 불안정해지며 기반 시설이 붕괴됩니다. 이처럼 기후는 일상의 불편을 넘어서, 도시 전체의 존폐를 좌우하는 조건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고고학은 이러한 사실을 수많은 유적을 통해 증명해 왔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우르, 중앙아메리카의 티칼, 페루 해안의 찬찬 문화, 동남아의 앙코르—이들은 모두 특정 시점까지 찬란한 거주지였지만, 기후 패턴의 급격한 변화 앞에서 중심 기능을 잃고 쇠락해 갔습니다. 사라진 도시들은 그 자체로 기후의 파급력을 증명하는 화석 같은 존재입니다. 이 글은 ‘건조화’와 ‘해수면 상승’이라는 양 극단의 자연조건이 어떻게 도시를 밀어냈는지를 중심으로, 문명과 기후의 관계를 되짚어보려 합니다.

건조화: 생존 기반을 무너뜨린 요인

도시가 지속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물입니다. 그러나 고대에는 인공 수자원 관리 기술이 한계가 있었고, 기후가 건조해질 경우 도시는 필연적으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메소포타미아의 우르입니다. 유프라테스강 근처에 세워진 이 도시는 처음엔 풍부한 물과 토양을 바탕으로 번성했지만, 기후가 점차 건조해지면서 강의 흐름이 바뀌고, 토양의 염분 농도가 높아지며 농경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수천 년에 걸쳐 성장한 도시는 몇 세대 만에 버려졌고, 이후 모래 바람만이 그 흔적을 덮었습니다. 중앙아메리카의 마야 도시들도 유사한 경로를 밟았습니다. 티칼, 팔렌케, 코판 같은 대도시들은 밀림 속에 정교한 수로와 저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지만, 반복되는 가뭄 앞에서는 이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장기 가뭄이 발생한 시기에는 수확량이 급감했고, 이로 인해 내전과 정치적 혼란이 가속화되었습니다. 물 부족은 곧 사회적 분열을 불러왔고, 이는 곧 도시 기능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건조화는 단순히 물이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라, 인구 밀도, 식량 분배, 노동 조직, 사회 통합이라는 복합 구조를 무너뜨리는 요인이 됩니다. 더구나 고대 사회에서는 기후를 정확히 예측하거나, 장기 대응 전략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결국 도시 거주민들은 ‘버티는 것’과 ‘떠나는 것’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하게 되었고, 그렇게 도시는 땅 위에서 사라졌습니다. 현재 우리가 보는 많은 고대 유적은, 사실 당시 사람들의 최후의 선택 이후 남겨진 껍데기입니다.

해수면 상승: 왜 항구 도시를 삼켰는가

기후 변화는 건조화만큼이나, 물의 과잉이라는 방식으로도 파괴력을 행사합니다. 특히 해수면 상승은 고대의 주요 항구 도시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해안선은 수세기 동안 안정된 듯 보이지만, 기후의 변화와 극심한 홍수, 빙하 융해가 겹치면서 해수면은 점진적으로 상승해 왔고, 해안 도시들은 바닷속으로 조금씩 침식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도시의 거주 구역과 기반 시설, 방어선, 항구는 순차적으로 기능을 상실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바이 지는 로마 제국 시절 호화로운 항구 도시였으며, 귀족과 정치인의 별장이 밀집한 해양 휴양지였습니다. 그러나 수세기에 걸쳐 해수면이 상승하고 지반이 침하하면서, 도시 대부분이 바닷속에 잠겼습니다. 현재 바이 지는 수중 고고학의 주요 현장으로 남아 있으며, 잘 보존된 로마 시대 건축물이 해저에 펼쳐져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집트의 헤라클레이온 역시 고대 세계에서 중요한 항구 도시였으나, 해수면 상승과 지반 침하가 동시에 일어나면서 완전히 수몰되었습니다. 이러한 도시들의 침수는 단지 물리적 파괴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역의 단절, 세금 수입의 급감, 방어선 붕괴 등 도시 전체의 기능 상실을 야기하고, 이는 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집니다. 도시를 떠난 사람들은 더 높은 곳, 더 안전한 내륙으로 이동하게 되고, 그 결과 해안 도시는 더 이상 유지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바닷속에서 발견하는 도로, 신전, 창고는 문명이 물아래로 밀려났다는 침묵의 증거입니다. 기후 변화는 도시를 직접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이렇게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숨 쉬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기후에 맞서지 못한 반응

고대의 도시는 강력한 성벽과 정교한 배수 시스템, 광대한 관개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건조화는 생존의 자원을 빼앗았고, 해수면 상승은 기반 시설을 침식시켰으며, 사람들은 결국 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도시의 명운을 결정짓는 가장 근본적인 변수였습니다. 사라진 도시들은 단순한 유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후 변화에 대한 인류의 반응이 기록된 장소입니다. 그리고 그 반응은 종종 '이탈'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비슷한 질문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기후가 바뀔 때, 우리는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 과거의 도시들은 이 질문에 대해 이미 하나의 대답을 남겨두었습니다. 기후는 문명의 경계를 밀어내는 가장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손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밀어내고 있는 중일지도 모릅니다.